우리말의 뿌리를 찾는 작업은 우리 역사의 뿌리를 캐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민족의 역사가 곧 언어의 역사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우리 나라에서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단일민족국가란 사실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선생님께서 우리말의 뿌리를 깨는 작업을 평생 하셨고 지금도 계속하고 계신다. 그것이 문자로 나타난 것은 여러 논문과 『우리말의 뿌리』라는 책에서 이미 볼 수 있고 어원연구의 불모지에 불씨를 당긴 계기가 되었다. 나름대로 여러 사람에 의해 어원 연구도 이루어졌는데, 선생님의 독특한 설이 알게 모르게 원용되고 있음도 사실이며, 혹독한 비판을 가한 사람도 있다. 특히 일본에서 선생님의 어원 풀이 방법론인 “國語 祖語再構와 消失語 再構”라는 독특한 학설은 일본어 및 알타이제어와 공통되는 것으로 많은 관심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1987년 오사카외국어 대학에서 학설을 발표하신 이래 수차례 걸쳐 일본 곳곳에서 강연 요청이 있어서 강연을 하셨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 요청을 하여 “일본어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다”를 비롯한 책 3권이 일본에서 간행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생님의 어원에 대한 열정은 “한국 특수어 연구(1959)”를 시작으로 하여 평생 하시고 계시는데,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우리 나라의 기층문화에 대한 독특한 사고와도 관련이 있다. 1986년에는 경희대학교 부설「경희알타이어 연구소」를 만들었고, 1997년에는「한국어원학회」로 확대 개편하여 현재「語原硏究」제3호까지 발간하였다. 이는 우리 나라 어원연구의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다.
선생님 문하에서 어학 공부를 시작했고 어원 연구도 하고 있지만, 선생님의 제자로서 선생님의 필생의 결실인 『國語語源辭典』의 편찬을 맡고 처음에는 매우 난감하였다. 혹시라도 선생님께 누가 될까 해서였다. 선생님께서 평생 동안 우리말의 어원을 밝히신 것을 사전으로 편찬하실 작업을 하신다는 것은 여러번 선생님께 들은 적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업하고 계신지는 몰랐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하얀 종이에 손으로 쓴 원고 꾸러미를 넘기시면서 사전 체재와 편찬 및 교정 보완 작업을 일임하셨다. 사실 나로서는 사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막막하였다. 원고 자체가 문장에서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일반 서적용이었지 사전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번 선생님과 체재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하고도 감이 잘 잡히지 않아 이미 나온 국내외 사전을 참고하여 편찬해 보려고 했으나, 어원 사전은 특수한 것이고 한편으로는 국내에서 나온 한두 종류와는 성격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더욱 난감했다. 그래서 우선 낱말의 풀이는 漢字로 선생님께서 일부 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보충하고 어원 풀이의 차례를 정한 뒤, 대학원생 김동은 선생에게 컴퓨터작업을 맡겼다. 이 때가 1998년 9월이었다. 원고 전산 입력에는 김동은 선생 책임 아래 우리말연구회 회원인 홍윤기 선생을 비롯하여 이정희, 호정은, 장미라, 이남숙, 이승문, 서진숙, 손금영 등이 고생하였다. 1998년 말부터 전산 입력한 것을 컴퓨터로 재구성과 보충 작업을 하기 시작하여 사전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먼저 전산화한 것부터 古語를 비롯한 알타이諸語를 하나하나 원전을 찾아 확인한 뒤 종이로 출력하여 선생님께 드려 교정을 보시도록 했다. 교정하신 것을 다시 컴퓨터 상에서 고치고 보완 작업을 하다 보니 자꾸 세월만 갔다. 1999년에는 사전작업이 외부에 알려져 일간 신문에서 취재하여 9월 무렵에 나온다고 기사화되자 조급한 마음을 금할 수 없어 빨리 완성하려고 했으나, 선생님께서 새로이 원고를 계속하여 쓰셨을 뿐만 아니라 전산 작업도 만만찮아 한해가 또 갔다. 1999년이 다할 무렵 어원사전 작업으로 밤 늦도록 연구실에서 컴퓨터와 씨름하던 일이 마침내 끝이 났다. 12월 어느 날 보고사 출판사 김흥국 사장과 함께 선생님을 뵙고 원고를 마침내 출판사에 넘겼다. 출판사에서 다시 편집을 하여 2000년 1월에 교정지를 받아 선생님께 1부를 드리고 김동은 선생에게 1부를 주어 다시 교정작업에 들어갔다. 3월 중순 다시 교정지를 모아 재교정 작업을 하고 참고문헌을 정리하여 출판사에 넘겼다. 교정작업에는 이관식 박사를 비롯하여 김지형, 김동은, 홍윤기, 방성원, 호정은, 장미라, 임채훈, 이민우, 김성용, 황봉희, 서진숙, 이진화 등이 수고했다.
빨리 이 작업에서 풀려나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오류가 발생하면 선생님을 뵐 면목이 없을 것이므로 미력을 다했다. 그래도 잘못이 있을 줄은 알면서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작업을 마무리하였다. 편찬의 책임은 오직 홀로 질 수밖에 없다. 많은 질책을 독자 여러분께 바라면서 삼가 편찬의 말을 마친다.

2000. 9.

朴在陽 삼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