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구애 - 살모사

지구상에는 모두 2,400종류의 뱀들이 있으며 뱀에 얽힌 이야기도 수없이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살모사에 대한 것이다. 이들은 태어나자마자 그 어미의 몸을 먹고 자란다 하여 이름을 살모사(殺母蛇)라고 한다는 근거없는 이야기가 전해 오기도 한다. 과연 살모사는 어떤 뱀이기에 이런 얘기가 전해오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살모사는 약 140여 종류가 있으며 대부분이 머리가 삼각형으로 되어 있고 입에는 한 쌍의 독니가 있다. 몸길이는 25㎝ 정도의 작은 것에서부터 4미터에 가깝게 성장하는 종까지 다양하며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것은 몸길이가 60㎝정도인 살모사, 까치살모사 그리고 쇠살모사의 세가지 종류이다. 대부분의 뱀들이 그렇듯이 살모사들도 매년 10월 정도가 되어 온도가 10℃ 내외로 낮아지면 햇빛이 잘드는 바위 사이의 틈새나 동굴 속에 들어가 동면을 한다. 약 5개월의 동면을 하고 3월경이 되면 살모사들은 동면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는데 대개 수컷들이 암컷보다 약 2주정도 먼저 깨어나 곧 찾아오게 될 사랑의 계절을 대비한다. 동면에서 깨어난 수컷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햇볕이 잘드는 따뜻한 곳에 누워 일광욕을 하면서 체온을 올려 몸속에 있는 정자를 성숙시키는 것이다. 그리고는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허물을 벗어버리고는 아직도 동면 중에 있는 암컷의 굴 근처로 가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는데, 그 넓이는 대략 1,500㎡정도로 알려져 있다. 수컷들은 짝짓기를 마치기전까지는 거의 먹이를 먹지 않고 지난해 여름철에 축적해 둔 지방을 이용하여 살아간다. 암컷의 굴 근처에 여러 마리 수컷이 모여들게 되면 이들은 한바탕 전투를 통해 누가 그곳의 암컷을 차지할지 결정한다. 무시무시한 독을 가진 살모사들끼리의 투쟁이 독이빨을 사용하여 서로를 물어뜯어 상대를 절명시키는 형태로 진행된다면 아마도 살모사들은 예전에 이미 멸종되었을 것이지만, 가장 잔혹할 것 같은 이들의 싸움은 마치 두 마리의 뱀이 한 몸이 되어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평화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들의 전투는 경쟁자를 발견한 수컷들이 서로에게 접근하여 머리와 몸을 세워서 밀착시키고는 몸을 엇갈리게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서로의 몸이 밀착되면 이들은 마치 함께 춤을 추듯 이리저리 흔들며 상대를 밀어 제압하려고 한다. 이들의 싸움에는 서로 유혈이 낭자한 혈투는 아니지만 여유롭게 춤을 추듯 흔들어대는 그들의 몸놀림 속에는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처절함이 있다. 이 싸움은 한쪽이 체력을 모두 소진하여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계속된다. 소모전 끝에 한마리가 물러나면 승자는 그곳에서 자신의 우세를 선언하고는 천천히 암컷들이 동면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린다. 동면에서 깨어난 암컷들은 대개 자신의 굴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는 수컷과 큰 반항 없이 짝을 이루게 된다. 처음으로 만난 암수는 바로 짝짓기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 며칠간은 함께 일광욕을 하면서 천천히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한다. 일찍부터 깨어나 충분한 일광욕을 하고 경쟁자를 물리치는 등 많은 활동을 해온 수컷은 암컷을 만나면 곧 짝짓기 준비가 되는데 반해 동면에서 깨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암컷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기간 동안 수컷은 암컷이 짝짓기 준비가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 곁에 바짝 붙어서 그 변화를 살피며, 일광욕을 하는 중간중간 몸위로 혀를 날름거리기도 하고 아래턱으로 툭툭 쳐보기도 하면서 암컷이 자신을 흥분시키는 냄새를 내도록 자극하기도 한다. 짝짓기를 할 시기가 다가오면 암수는 서로 몸을 엇갈려 마치 수컷들끼리 싸우는 듯한 자세로 몸을 흔들면서 춤을 춘다. 수컷은 암컷이 완전히 준비될 때까지 길고 아름다운 구애의 시간을 갖는다. 춤을 추다가 암컷이 천천히 몸을 풀면 수컷은 자신의 성기를 내어 삽입을 한다. 뱀들의 성기는 평소에는 몸 안에 있어서 보이지 않다가 짝짓기를 할 때면 높아지는 혈압과 근육의 수축작용에 의해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두 개가 한 쌍으로 되어 끝 부분이 좌우로 향하고 있으며, 수컷은 그 중 하나만을 삽입해도 짝짓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좌우측 어느쪽에 암컷이 있더라도 성공적인 삽입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수컷의 성기에는 가시같은 돌기들이 뒤쪽으로 돌출되어 있어 한번 삽입이 되면 오랜 시간 동안 떨어지지 않고 삽입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짝짓기 시간은 종류에 따라 10분 정도부터 이틀 이상 지속하는 것도 있으나, 살모사의 경우에는 3~4 시간 정도 지속된다. 짝짓기가 끝나도 암수는 다시 며칠간을 함께 보내다가 각자 먹이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암컷은 6월쯤에 허물을 벗고 여름내내 일광욕을 하기도 하고, 개구리, 쥐와 같은 소형 포유류, 어린 새 그리고 곤충 같은 것들까지 잡아먹으며 보낸다. 8월말에서 9월 정도가 되면 암컷은 겨울철에 동면을 할 굴로 이동하여 약 15㎝ 정도 길이의 새끼를 5~12 마리 출산한다. 뱀들은 알을 낳아 부화를 시키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해 살모사의 경우에는 암컷이 뱃속에서 알을 부화시켜 새끼로 낳는 "난태생"의 형태로 번식을 한다. 볼펜 정도 크기의 새끼 살모사들은 태어나자마자 굴속에서 나와 숲속으로 흩어져서 스스로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10월이 되면 어른 뱀들과 마찬가지로 동면에 들어가는데, 환경이 좋고 큰 굴속에는 800마리나 되는 뱀들이 모여서 동면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새끼들 중 그 다음해 봄까지 살아남는 것들은 약 절반 정도뿐이다. 새끼는 약 4년이 지나야 짝짓기를 할 수 있다. 가장 무서운 천적인 사람들의 간섭만 없다면 보통 10∼25년까지 살아간다.